백신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어느 저녁 자리에서 코로나 백신에 대하여 이야기 하던 중 도대체 그 백신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방송에서 “무슨 신, 무슨 신” 하면서 마지막에는 “백신”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백신에서 ‘신’은 귀신의 ‘신’(神)도 아니고 어떤 장면의 ‘신’(scene)도 아닙니다.
이야기는 1798년으로 옮겨 갑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天然痘; smallpox)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논문을 발표한 해입니다. 사실 그의 논문은 2년 전에 완성이 되었습니다만, 우여곡절을 거쳐 개인 돈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논문의 기본을 간단히 설명드립니다. 두창(痘瘡; 우리 말로 “마마”라고도 하지요)이라는 병은 동물들에게도 흔한 질병입니다. 하지만 동물의 종류에 따라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조금씩 다릅니다.
여러분은 우두(牛痘)라는 말을 들어보셨겠지요? 소에 감염하는 두창이란 말입니다. 사람을 감염시키는 천연두는 사실 인두(人痘)라고 불렀어야 맞는 말입니다. 제너 시절에 소의 젖을 짜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은 우두에 걸렸던 사람들은 절대로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너가 최초로 이러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논문 제목에는 우두(Variolae vaccinae)로 천연두를 예방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에서 현대어로 variola는 두창을 의미하고 vaccinae라는 말은 라틴어로 cow라는 말의 형용사형입니다. 즉 암소의 두창에서 얻은 분비물로 사람의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진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그런데 1879년에는 프랑스의 파스퇴르가 가금류(家禽類; 닭, 오리 등과 같은 새 종류의 가축을 이르는 말)에 콜레라를 일으키는 세균을 연구하던 도중에 그의 조수인 샹베르망에 의하여 배양하여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세균들은 그 독성을 잃어버려 닭에 주사해도 콜레라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조금은 당황하였겠지요. 그리하여 그는 다시 그 세균을 새롭게 배양하여 그 닭들에게 주사하였는데도 콜레라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배양이 잘못되었는가 하여 앞의 오래된 세균을 주사하지 않은 새로운 건강한 닭들에게 주사하였더니 콜레라 증상을 보이며 닭들은 사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약화된 세균이 질병에 대하여 면역력을 생기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발견을 할 때 과학자들이 느끼는 희열을 상상하실 수 있겠나요? 파스퇴르는 인류 최초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만,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0여 년 전 영국에서 제너가 이미 그러한 논문을 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너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논문 제목에 vaccination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암소와 전혀 관계없는 논문인데도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과학적 용어가 그렇게 하여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파스퇴르가 발견한 저온살균법은 영어로 pasteurization이라고 합니다. 제너가 아니었다면 어떤 다른 이름을 지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군요.
사진 출처: 클립아트 코리아
한 가지 잊을 법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1세기 경 중국에서 개발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천연두 예방법, 즉 환부의 딱지를 갈아 코로 들이마시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방법은 실크로드를 타고 전파되어, 18세기에는 터어키에서도 좀 더 발전된 형태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두법(種痘法; 칼로 상처를 내고 우두를 접종(接種)하는 일)인 셈입니다.
당시 터어키에 나와 있던 영국 대사 부인인 몬태규 부인에 의하여 영국으로 소개되었지만, 당시 영국의 의학계는 매우 교만한 자세로 이러한 방법을 무시하였지요. 그 후, 제너가 과학적으로 천연두 예방법을 밝혀내고도 거의 200년이 다 되어서 인류는 천연두를 없애는 개가(凱歌)를 올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7년 이후 종두법을 시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세계보건 기구는 1980년 5월 8일 공식적으로 지구 상에서 천연두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공표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영문이기는 합니다만) 다음에 소개하는 글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200696/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111/j.1469-0691.2012.0394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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