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역 역사의 양면: 비극과 회복의 역사

파스퇴르는 닭의 콜레라를 연구하던 중에 알게 된 사실로부터 탄저병과 광견병에 대한 백신도 개발하게 됩니다. 1881년 5월 파리 근교에서 파스퇴르는 탄저병 백신 개발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을 상대로 공개실험을 하였지요. 간단히 설명해 보면, 백신을 주사하고 시간이 경과된 25마리의 양들과, 백신을 주사하지 않은 다른 25마리의 양들에게 강력한 탄저병균을 주사하였습니다. 예상한대로 백신을 주사하지 않은 양들은 모두 사망하였는데 반하여, 백신을 주사한 양들 중에는 임신으로 인하여 약간의 부작용을 보인 양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무사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학술적 목적으로 따로 떼어 놓은 10마리의 양은 이야기에서 뺍니다.)
1885년에는 아홉 살 짜리 소년이 이웃의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심하게 물려 병원을 찾아다녔어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자 파스퇴르를 찾게 됩니다. 백신이란 원래 특정의 병에 걸리기 전에 접종하여 그 병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기본 원리이지만, 여기에서 길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간단히 줄이면, 개에게 물린 직후 일정 시간 안에 백신으로 준비한 병원균을 주입하면 우리 몸의 면역력이 생기면서 이미 들어와 있던 병원균에 대해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로 파스퇴르는 한 소년의 생명을 구하였고, 목숨을 구한 그 소년은 후일 파스퇴르 연구소의 수위로 근무하다가 2차 대전 중의 폭격으로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요.

사진 출처: Photo by Sam Moqadam on Unsplash
여기에 언급하기가 부적절할지는 몰라도, 면역학의 중흥을 가져온 파스퇴르의 연구 업적에는 조금은 불편한 진실들이 숨어 있는데, 닭의 콜레라를 통하여 면역력의 생성을 확인한 업적은 그의 조수인 샹베르망의 공이며, 그 후의 탄저병 및 광견병의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제자들의 도움이 매우 중요했으며, 나아가 남의 기술을 활용하였다는 것이 그의 사후에 확인되었지요. 씁쓸한 사실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같은 시대에 독일에서는 코호의 연구실이 면역학의 부흥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코호는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결핵에 대한 깊은 연구로 후일 제자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게 되는데, 그의 실험실에서는 역시 유럽에서 많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디프테리아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탄저병이나 콜레라 등 파스퇴르의 연구실과 겹쳐지는 연구들도 많았으나, 파스퇴르의 연구실은 훗날 체액성 면역이라고 부르는 항체 생성에 대한 연구를 이끌어 왔다면, 코호의 연구실에서는 세포성 면역이라고 부르는 백혈구(특히 T세포)에 의한 연구를 이끌어 왔습니다. 이른바 면역학의 양대 산맥이 형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지요.

사진 출처: Photo by National Cancer Institute on Unsplash
파스퇴르나 코호에 의하여 제너의 면역학이 부활하면서 두 실험실의 많은 제자들은 여러 종류의 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에 대하여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데, 훗날 미생물학자들은 이 시기를 “미생물학의 황금시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에 의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에 대하여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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