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나
인류는 오래전부터 어떤 질병을 한 번 앓고 나면 다시 그 병을 앓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표적인 질병으로 천연두를 꼽을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천연두의 환부에 생긴 이른바 “딱지”를 갈아 코로 들이마시게 하는 것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방법이 11세기 중국에서 개발되어 실크로드를 통하여 18세기에는 오스만 터어키 제국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에 일정한 규칙이 없다 보니, 때로는 전혀 면역력이 생기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이러한 시술로 인하여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Ivan Diaz on Unsplash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 일반적인 천연두는 25~30%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그나마 정확한 방법이 아니었음에도 이러한 시술을 받은 경우의 사망률은 2~3%로 줄일 수 있었으니 경험에 의한 예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쪽으로 퍼지면서, 또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는 나름대로 점점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천연두를 이겨내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오스만 터어키 제국에 이르렀을 때에는 환부의 고름을 채취하여 멀쩡한 피부에 상처를 내어 인체에 주입하는 방법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시간이 지난 다음 우리 말로 “종두법”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영어로는 “inocul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진 출처: Fusion Medical Animation on Unsplash
에드워드 제너는 정식으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네 병원에서 이른바 도제식 수업을 통하여 의사가 된 사람인데, 나름대로 총기가 있어 16세 때의 경험이 나중에 천연두 백신 개발의 바탕이 됩니다. 하루는 젊은 여인이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의사의 진단이 천연두라 하자, 그 여인은 “나는 천연두에 걸릴 수 없어요. 난 소 젖을 짜는 사람이니까요”라고 답을 합니다. 당시에 소 젖을 짜는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민간에 널리 통용되던 의학 상식이었습니다.
제너는 훗날 런던의 성 죠지 대학 병원에서 유명한 존 헌터 교수에게 2년 동안 제대로 의학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때 배운 “생각만 하지 말고 실험으로 증명”하여야 한다는 교훈(원래 윌리암 하아비의 가르침)에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천연두 백신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병원균 자체를 이용하여 면역력을 기르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Edward Jenner vaccinating his son, held by Mrs Jenner; a maid rolls up her sleeve, a man stands outside holding a cow. Coloured engraving by C. Manigaud after E Hamman. The Wellcome Collection
제너 이후에 세월이 지나도록 백신과 관련한 과학의 발전은 별로 진전되지 못하였는데, 프랑스의 파스퇴르의 연구실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닭의 콜레라를 연구하던 파스퇴르의 연구실에서 약화된 병원균이 면역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인류의 역사상 자신이 처음으로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줄 생각하였으나, 거의 80년 전에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것을 알고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백신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백신이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vacca(와카라고 읽는다)”는 영어의 “cow”라는 말로, 파스퇴르는 닭의 질병에서 백신의 원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다른 말을 쓸 수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살아있는 병원균 자체 혹은 약화 된 병원체를 적절히 사람에게 주입하였을 때 그 병을 앓지 않아도 그 병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우리는 수많은 질병을 이겨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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